2014년 1월 10일 금요일

무정부주의적 노동조합주의(anarcho-syndicalism)에 관하여 (1)


서적, 촘스키의 아나키즘의 한 부분을 발췌한 글입니다.

좌담과 인터뷰를 엮어낸 책이기에 질문과 답변의 순서로 진행됩니다.



촘스키 교수님, 먼저 무정부주의의 정확한 뜻부터 짚어봐야 할 것 같습니다. 본래 Anarchy라는 단어의 어원은 그리스어로, 문자 그대로 '무정부(no government)'라는 뜻입니다. 현재 사람들이 하나의 정치원리로서 말하는 무정부나 무정부주의와는 그 의미가 사뭇 다른 것 같습니다. 말하자면, 내년 1월 1일에 지금까지 있던 정부가 갑자기 사라지는 상황, 즉 경찰도 없고 도로교통법이나 그 어떤 법률도 존재하지 않으며 세금 징수원이나 우체국 같은 것들이 전혀 없는 그런 상태를 말하는 것 같지는 않은 데요. 이보다 좀 더 복잡한 형태를 의미한다고 봅니다.



예, 일부는 맞는 말이기도 합니다만 그렇지 않은 점도 있죠. 분명 경찰이 없다는 말은 맞을 겁니다. 그러나 도로교통법까지 없다는 말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먼저 무정부주의라는 용어가 상당히 광범위한 정치사상을 담고 있다는 말부터 해야 할 것 같습니다. 그러나 실제로는 무정부주의를 자유의지적 좌파의 사상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훨씬 많습니다. 따라서 이런 관점으로 보면, 무정부주의는 전통적으로 바쿠닌과 크로포트킨 같은 사람들을 일컫는 자유의지적 사회주의자나 무정부주의적 노동조합주의자 혹은 공산주의 무정부주의자처럼 일종의 자유의지적 사회주의로 인식될 수 있습니다. 이들은 모두 고도로 조직화된 사회형태, 즉 각 단위별로 그리고 공동체별로 유기적으로 조직화된 사회를 지향했습니다. 이런 유기적인 조직은 일반적으로 일터나 주택 지구를 뜻하는 것으로, 이 두 가지 기본 단위를 기초로 연합체를 조정함으로써 고도로 통합된 사회조직이 탄생할 수 있습니다. 또 이렇게 탄생한 조직은 전국 조직, 더 나아가 국제 조직이 될 수 있습니다. 의사 결정 과정 또한 실질적인 범위에서 이루어져 해당 조직 공동체에 소속된 대의원들이 이끌어 나가게 되죠. 대의원들이 소속된 공동체는 그들을 있게 한 원천이며 그들이 다시 돌아갈 곳으로, 사실상 삶의 터전이라고 볼 수 있죠.

그렇다면 무정부주의란 문자 그대로 정부가 없는 사회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권력이 상부가 아닌 하부에서 발생하는 그런 사회를 뜻하는 거군요. 이에 반해 현재 미국과 영국의 경우처럼 대의민주주의는 유권자들이 결정권을 갖고 있긴 하지만 상부에서 권력이 나오는 형태를 띠고 있다고 봐야 하겠네요.

미국이나 영국의 대의민주주의는 무정부주의자의 관점에서 보면 두 가지 이유 때문에 비판의 대상이 될 것입니다. 첫째, 국가에 권력이 집중되기 때문이고 둘째, 대의민주주의는 정치 영역에만 한정돼 있어 경제 영역에서 일어나는 권리 침해에는 손 쓸 도리가 없기 때문입니다. 이런 관점을 지닌 무정부주의자들은 생산 활동을 민주적으로 관리하는 일이야말로 인간 해방의 진정한 핵심이며 어떤 것보다 중요한 민주적 관행이라고 주장 해왔습니다. 다시 한 번 말하자면, 개인들이 강제로 시장에 내몰려 그들을 고용하려는 사람들에게 임대되고 생산과정에서 개인들이 단지 보조도구로 전락하는 일이 계속되는 한 강제와 억압의 요소들이 크게 부각될 수밖에 없습니다. 따라서 민주주의에 대한 논의 자체가 비록 의미 있을지는 모르지만 여전히 제한적일 수밖에 없습니다.

역사적으로 볼 때, 무정부주의 이념에 근접하는 사회 형태가 실제로 존재한 적이 있었나요?

그 수는 아주 적지만, 무정부주의 이념에 꽤 부합하는 사회 형태가 있었습니다. 또 넓은 의미의 무정부주의라고 볼 수 있는 대규모 자유의지적 혁명 사례도 한두 차례 있었습니다. 먼저 사회 형태에 관해 말하자면, 오랜 기간에 걸쳐 확장돼온 작은 사회 형태들이 있는데, 제 개인적인 생각으로 이스라엘의 집단농장(Kibbutzim)이 가장 극명한 사례가 아닐까 합니다. 이들 사회 형태들은 실제로도 오랫동안 무정부주의에서 내세우는 원칙들을 바탕으로 설립됐습니다. 즉 자체적으로 운영하고, 노동자가 직접 관리하며, 농업 분야와 산업 분야 그리고 서비스 분야를 하나로 통합하며, 자체 운영 체제에 개인들이 직접 참여하는 것을 원칙으로 합니다. 더구나 이런 원칙들을 바탕으로 설립된 사회들은 거의 어떤 누구의 관점으로 보더라도 엄청난 성공을 거뒀다고 생각합니다.

그렇지만 그런 사회들 역시 아마 과거에도 그랬고 현재도 여전히 어떤 기본적인 안정성을 보장하는 전통적인 국가의 틀 속에 있다고 보는데요.

음. 항상 그랬던 것은 아닙니다. 실제로 이들 역사를 살펴보면 흥미로운 점들이 많습니다. 1948년 이후로 이런 사회 형태들은 전통적인 국가의 틀 속으로 편입됐습니다. 그 이전까지 이런 사회 형태는 식민지에서만 가능했었고 사실상 지하조직 같은 대규모 협동조합 형태로서 영국의 통치권 밖에서 활동하고 있었습니다. 어느 정도까지는 이런 사회 형태가 국가의 기성 체제에 편입되지 않고 살아남았지만 결국 국가로 통합되었습니다. 제가 볼 때, 국가로 통합되는 과정과 우리가 설명할 필요까지는 없는 해당 지역의 역사에서만 볼 수 있는 독특한 다른 과정들을 겪으며 본래의 자유의지적 성향이 상당 부분 사라졌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자유의지적 사회주의 제도 역할을 하고 있는 이런 사회 형태들은, 흥미 있는 모델로서 과거에 존재했던 일부 다른 사례들과는 달리 선진 산업사회와 상당히 밀접한 관련이 있다고 봅니다. 1936년 스페인 혁명은 대규모 무정부주의 혁명의 좋은 사례입니다. 사실 내가 알고 있는 최상의 사례이기도 하지요. 어쨌든, 스페인 공화국 시기에 상당히 고무적인 무정부주의 혁명이 일어났습니다. 이 혁명은 산업과 농업 분야를 비롯해 광범위한 영역에서 일어났습니다. 외부에서 볼 때는 마치 이 혁명이 자연 발생적으로 일어난 것 같았지요. 그러나 사실 그 근간을 자세히 살펴보면, 이 혁명은 약 3세대에 걸친 실험과 사유 그리고 작업 과정을 통해 거의 산업화 이전 상태에 가까운 사회에서 살던 대다수 주민들에게서 무정부주의 사상을 확산시켰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이 역시 인간적인 기준으로 보나 경제적인 기준으로 보나 상당히 성공적인 혁명이었습니다.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생산이 효과적으로 지속됐다는 말입니다. 또 농장과 공장의 노동자들은 상부의 강제 없이도 자신들의 일을 훌륭히 관리할 수 있다는 것을 입증했습니다. 이는 많은 사회주의자들과 공산주의자들 그리고 자유주의자들과 그 외에도 여러 사람들이 장담했던 것과는 전혀 다른 결과였습니다. 사실, 당신도 그때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 말할 수 없을 겁니다. 그랬던 무정부주의 혁명이 무력에 의해 간단히 좌절되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혁명 기간 동안만큼은 정말로 대단한 성공을 맛보았다고 생각합니다. 앞서 말한 것처럼, 여러 방면에서 가난한 노동자들이 상부의 강압이나 통제 없이도 자신들의 일을 아주 성공적으로 조직하고 관리할 수 있는 능력을 입증한 것은 아주 고무적인 일이었습니다. 스페인 혁명의 경험이 선진 산업사회와 어떤 관련이 있는지에 대해서는 좀 더 상세한 설명이 필요할 것입니다. ㈎


분명 무정부주의의 근본 사상은 개인-이때의 개인이란 고립된 개인이 아니라 다른 개인들과 함께 하는 개인을 의미-을 제일 우위로 삼고 그 개인의 자유를 최대한 실현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볼 때 무정부주의는 미국의 건국이념과 아주 닮아 있군요. 그렇다면 교수님 같은 무정부주의자들과 자유의지적 사회주의 사상가들이 생각할 때, 미국에서 자유를 이와 같은 뜻으로 사용하게 만든 인물은 누구며 부정확한 표현으로는 어떤 것이 있는지 말씀해주시겠습니까?

먼저 나는 내 자신을 무정부주의 사상가로 여기지 않는다는 점을 말해둬야겠군요. 굳이 말하자면 비슷한 목적지로 가는 여행자 정도가 어떨까 합니다. 무정부주의 사상가들은 미국인들의 경험과 제퍼슨식 민주주의 이상에 대해 아주 호의적인 견해를 일관되게 밝혀왔습니다. 당신도 알다시피 '최상의 정부는 최소한도로 통치하는 정부'라는 제퍼슨의 이념이나 이에 덧붙여 '최상의 정부는 전혀 통치하지 않는 정부'라고 말한 헨리 데이비드 소로의 생각은 오늘날 무정부주의 사상가들이 자주 언급하는 사상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제퍼슨식 민주주의 이념은 자본주의 이전 체제에서 발전했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습니다. 즉 그 시기에는 독점적인 관리체제도 없었고 어떤 중요한 개인 권력의 중심체도 없었습니다. 사실, 현재 시점에서 과거로 돌아가 전통적인 자유의지론 저작들을 읽어보는 것도 흥미로운 일입니다. 예를 들어 밀에게 영감을 준 게 확실한 전통적인 자유의지론 저작인 훔볼트의 국가비평서(1792)를 읽어보면, 훔볼트기 개인에게 권력이 집중되는 현상에 반기를 들어야 한다는 말을 한 적이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될 것입니다. 오히려 훔볼트는 강압적인 국가 권력이 확산되지 못하도록 막아야 한다고 쓰고 있습니다. 이런 주장은 초창기 미국의 전통에서도 역시 찾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주장은 단지 한 가지 권력만 존재한다는 전제를 바탕으로 합니다. 즉 다시 말하면 훔볼트는 개개인들이 거의 대등하게 권력을 지니고 있으며, 실질적인 유일한 권력 불균형은 중앙 집권화된 독재국가에만 존재한다고 생각했습니다. 또 개인의 자유는 국가나 교회 같은 방해세력들을 막아야 지켜낼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따라서 인간이 저항해야 하는 대상이 바로 이런 세력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예를 들어 현재 훔볼트가 개인의 창의적 활동을 통제할 필요성을 제기 한다거나 자신의 일을 스스로 관리하지 못하고 강압이나 지시 혹은 안내를 받아 일을 함으로써 발생하는 노동의 소회 현상을 비난한다면 그것은 반통계적이고 반신권정치적인 이념이 될 것입니다. 그러나 이후에 출현하는 자본주의 산업사회에도 똑같은 원칙이 아주 잘 적용됩니다. 나는 훔볼트가 일관성을 유지했다면 결국 그는 자유의지적 사회주의자가 됐을 것이라고 늘 생각했습니다.


이런 선례들이 산업사회 이전에 한해 자유의지론 사상을 적용할 수 있다는 것을 암시하는 것은 아니지 않습니까? 즉 자유의지론 사상이 기술과 생산체제가 상당히 단순하고 경제조직이 소규모이면서 지방에 국한된 그런 지역사회를 반드시 전제하는 것은 아니지 않습니까?

자, 두 가지 질문으로 분리해봅시다. 즉 무정부주의자들이 어떻게 생각할 것인지와 저는 어떻게 새악하는지로 나눠봅시다. 무정부주의에는 두가지 전통이 있습니다. 그 하나는 크로포트킨에게서 발전한 무정부주의로, 당신이 설명한 특징과 상당 부분 일치합니다. 반면에 또 다른 무정부주의 전통은 무정부주의적 노동조합주의로 발전해, 무정부주의 사상들을 고도로 복잡해진 선진 산업사회에 적당한 조직의 한 형태로 간주합니다. 이런 경향의 무정부주의는 다양한 좌파 마르크스주의와 합쳐지거나 적어도 아주 밀접하게 연결됩니다. 좌파 마르크스주의는 로자 룩셈부르크의 사상을 이어받은 평의회 공산주의자들에게서 발견할 수 있는데, 이후 판네쾨크 같은 마르크스주의 이론가들로 대표되는 마르크스주의입니다. 그런데 판네쾨크는 산업 분야 노동자평의회의 전반적인 이론을 발전시킨 인물로, 원래는 과학자이자 천문학자로서 산업세계와 밀접한 관련이 있었습니다.


 그렇다면 이 두 가지 관점 가운데 어떤 것이 옳을까요? 즉 무정부주의 사상들은 산업화 이전 단계의 인간 사회에나 적용할 수 있는 것일까요, 아니면 고도 선진 산업사회에 꼭 맞는 합리적인 체제일까요? 우선 저는 후자가 맞다고 생각합니다. 다시 말하면, 산업화와 기술 발달이 광범위한 영역에 걸쳐 자체 관리체제의 가능성을 높인다고 생각합니다. 이전 시기에는 이런 체제가 존재조차 하지 않았습니다. 게다가 사실상 이런 체지는 분명 선진적이고 복잡한 산업사회에 걸맞는 합리적 형태라는 겁니다. 이런 체제에서는 노동자들이 가게의 운영이나 관리처럼 자신들과 직결되는 일들을 아주 능숙하게 직접 다룰 수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경제구조와 사회제도 그리고 각종 입안들에 관해 중요하고 실질적인 결정권을 행사하는 지위를 얻을 수 있습니다. 현재는 각종 제도들의 벽에 부딪혀 노동자들이 필요한 정보를 관리하지 못하고 있으며 이와 관련된 훈련도 받지 못해 이런 문제들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거의 모든 일들을 자동화할 수 있습니다. 적어도, 사회생활을 품위 있게 유지하기 위해 필요한 일들 중 상당수는 기계에게 맡길 수 있습니다. 이 말은 결국 산업혁명의 초기 단계에서는 불가능했을지 모르는 창조적인 일들을 인간들이 자유롭게 맡아 할 수 있다는 것을 뜻합니다.

 저는 곧바로 무정부주의 사회의 경제적인 측면에 관해 이야기하고 싶습니다만, 교수님께서 아시는 대로 현재 상황에 비추어 무정부주의 사회의 정치구조를 좀 더 상세하게 설명해주실 수 있을까요? 예를 들면 정당이 출현하게 될지, 혹은 어떤 형태의 정부가 남게 될지 알고 싶습니다.

 제 의견과 비슷한 점들과 함께 본질적으로 제 생각과 딱 맞아떨어지는 것들을 말해야겠군요. 일터와 공동체 내에서 이루어지는 직접적인 조직과 관리의 두 가지 양식에 대해서 말하자면, 먼저 노동자들의 평의회 조직망과 이보다 상위 조직으로 공장이나 각 산업 지부 혹은 수공업까지 전체 산업을 대표하는 대표단 그리고 더 나아가 지역단위와 전국단위 그리고 국제적으로 조직된 노동자평의회 총회를 상상할 수 있을 겁니다. 그리고 이와 달리, 지역별로 연합된 형태로서 해당 지역의 문제들을 처리하고 수공업과 산업 그리고 무역등을 관장하며 연맹과 같은 형태를 갖춘 전국적인 차원 이상의 관리체제를 예측할 수 있습니다.

 이런 관리체제들이 정확히 어떻게 발전할 것인지, 또 각각의 관리체제들이 어떻게 연결될지가 질문의 핵심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문제들은 무정부주의 이론가들이 논쟁을 거듭해온 사안으로서 여러 가지 안들이 존재하기 때문에 제가 자신 있게 분명한 견해를 제시하기는 어렵군요. 이 문제들은 앞으로 더 많은 논의를 거쳐 결정해야 한다고 봅니다.

 그렇지만 정당과 직접선거가 전국 방방곡곡에서 조직되기란 힘들 것 같습니다. 만약 그렇게 된다 하더라도 결과는 무정부주의 사상과는 적대적인 일종의 중앙 권력이 생겨날 가능성이 높지 않을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무정부주의 사상에 따르면, 권력을 위임받은 대표단은 최소한의 힘을 가지며 대표단에 참여하는 사람들은 그들의 터전인 조직 공동체의 요구에 응해야 합니다. 사실, 최선의 상황을 만들려면 이런 대표단 활동이 일시적일 뿐 아니라 활동하는 동안에도 단지 부분적으로 참여해야만 합니다. 즉 노동자평의회를 구성하는 구성원들은 일정 기간 다른 노동자들이 시간적인 여유가 없어서 위임한 결정권을 대신 행사하는 임무를 맡은 것이기 때문에 그들이 속한 일터나 지역 공동체의 일원으로서 해야 할 일들도 계속 해나가야 합니다.

 정당 문제로 넘어가면, 무정부주의 사회가 된다고 해서 정당이 출현할 수 없으리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사실, 무정부주의의 바탕에는 마치 프로크루스테스 침대(Procrustean bed,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노상강도 프로크루스테스가 여행자를 잡아 자기 침대에 눕혀 침대보다 키가 큰 사람은 다리를 자르고 작은 사람은 몸을 잡아 늘였다는 데서 나온 말로, 자신이 세운 일방적인 기준에 다른 사람들의 생각을 억지로 맞추려는 아집과 편견을 비유하는 관용구 - 옮긴이)처럼 사회 활동을 규정하는 기준이라면 그것이 어떤 것이든 사회활동의 활력과 생명력을 구속하고 그 가치를 상당 부분 떨어뜨릴 것이라는 생각이 깔려 있습니다. 또 이런 기준이 난무하는 사회보다 더 높은 수준의 물질적, 지적 문화가 형성돼야만 자발적인 조직이 탄생할 수 있는 새로운 가능성들이 발전할 것이라고 믿었습니다. 그러나 제 생각에는 "정당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보는 한 무정부주의 사회체제는 실패할 것"이라는 말이 꽤 타당하다고 봅니다. 무슨 말이냐면, 자체 경영 시스템뿐만 아니라 경제와 사회의 전반적인 업무에 직접 참여하다 보면 기꺼이 받아들이고 촉진해야 할 일인 당쟁과 대립 또는 관심사나 사상 및 의견의 차이들이 매번 나타날 게 분명합니다. 저는 왜 이들 조직이 두세 개의 정당으로 나뉘어야 하는지 그 이유를 잘 모르겠습니다. 저는 인간의 복잡한 관심사와 삶은 정당을 구분하는 식으로 나눠지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정당들은 기본적으로 계급의 이익을 대변합니다. 그런데 무정부주의 사회에서는 계급이 없어지거나 넘어서야 할 대상이 될 것입니다.

 정치조직에 관한 마지막 질문이 되겠는데요. 직접선거도 없는 이런 종류의 계층적인 회의체와 준정부 구조는 어떻게 보면 피라미드처럼 생긴 구조로서 맨 꼭대기에 있는 중앙조직과 제일 밑에 있는 민중들 사이의 거리가 꽤 멉니다. 또 국제적인 사안들을 다루려면 일정 정도 권력을 쥘수밖에 없으며 심지어 군대를 통솔해야 할지도 모릅니다. 정말 이런 상황이 닥친다면 민주적인 대응 면에서 현재의 정권보다 더 취약할 수도 있는데 이런 위험성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질문자께서 말한 그런 방향으로 전개되지 못하게 한다는 점이 바로 자유의지적 사회의 가장 중요한 특징입니다. 가능성이 전혀 없지는 않겠지만 충분히 막을 수 있도록 반드시 제도를 정비해야 합니다. 그리고 저는 충분히 막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조직을 관리하는 데 상근으로 참여해야 한다는 생각에는 동의하지 않습니다. 그런 식의 참여는 비합리적인 사회에서나 적합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런 사회에서는 비합리적인 제도들 때문에 온갖 문제들이 발생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저는 자유의지적 방침에 따라 적절한 역할을 하도록 조직된 선진 산업사회에서는 대표 기구들의 결정권 행사를 시간제 임무로 정해 공동체 전체가 돌아가며 맡아야 하며, 더 나아가 자신의 본업에 지속적으로 참여하는 사람들이 맡아야 한다고 늘 생각해왔습니다.

 어쩌면 관리 임무는 철강 생산과 맞먹는 일일지도 모릅니다. 나는 이 말이 사실인지 여부는 생각으로 판단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확실한 경험적 사실로 판단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어쨌든 이 말이 사실로 판명된다면, 그것은 다음과 같은 사실을 자연스럽게 암시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즉 관리체제는 단지 산업의 여러부문 중 하나로서 해당 산업 분야의 노동자평의회와 자체 관리체제 그리고 더 광범위한 조직체에 대한 참여를 통해 산업에 가장 알맞게 조직돼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저는 일전에, 1956년 헝가리 혁명의 사례처럼 여러 곳에서 자발적으로 발전해온 노동자평의회에서 이와 아주 유사한 일이 실제로 일어났었다고 말한 바 있습니다. 제가 기억하기로는 산업의 또 다른 부문으로서 산업 분야에 따라 조직됐던 공무원 노동자평의회였던 것 같습니다. 이런 사례는 충분히 가능한 일입니다. 따라서 이런 관리체제는 무정부주의자들이 두려워하는 강압적인 관료정치의 기미가 조금이라도 생겨나지 않도록 막아주는 방어벽 역할을 해야 하며, 또 그런 역할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가: Roxetty-1980 광주혁명 당시, 정부에게서 독립 되어 있던 광주시의 풍경은 무정부주의의 혼란과 약탈이 아니었습니다. 힘좋은 젊은 이들은 바리케이트를 쌓았고 간호사와 의사들은 의료장비를 들고 다니며 다친 사람들을 돌봤으며 식당 아주머니들은 주먹밥을 나눠주었습니다. 저는 살아남은 광주 혁명가들이 남긴 책들을 읽으며 당시 광주에서 바람직한 무정부주의 사회의 가능성을 발견했습니다. 그 자생력은 무력으로 군부정치를 이끌던 당시 한국 지도층들이 가장 두려워했을 것이기도 하지요.)


.........................to be continu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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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이 길어 1,2로 나누어 올리겠습니다. 저는 사실 이 글을 읽으며 너무 관념적인 이야기가 오가는 느낌이 들어 실현 가능성에 의문을 오랜 시간 가져왔습니다. 그러나 스웨덴의 국회의원에 대한 것들을 접하며 저들이 할 수 있다면 우리는 왜 못하겠는가 하는 생각도 들더군요. 물론 제가 접할 수 있는 것들은 대중매체들이 보여주는 것 밖에 없겠지만 유럽 국가들의 정치문화와 정책들은 (한국인으로서 보기에)독특하고 매력적입니다.
마지막으로 스웨덴 국회의원들에 대한 보도입니다.
- Youtube: 전용차도 개인비서도 없는 국회의원)



댓글 3개:

  1. 긴 글 잘 읽었습니다. 그런데, 직접민주주의에 해당하는 스웨덴식 국회의원 제도는 국회의원이 예산을 따로 편성을 받지 않아 다른 직업을 병행하는 것과 함께 권력을 집중시키지 않아 좋다는 평가가 있지만 한국에서 과연 가능한 모델인가를 두고서 논란이 될 수 밖에 없는 것이 있는데요.
    스웨덴은 남한 면적보다 절반에 약간 못 미치는 크기에 인구는 911만으로 남한 인구의 5분의 1수준이고, 인구 과밀화가 이루어지지 않아 주와 시의 형태를 동시에 갖춰 유별히 인구가 과밀 되었다는 수도 스톡홀름의 인구는 212만에 불과해 충청도 인구수보다도 적습니다. 더욱이 스웨덴 제 2의 도시라는 예테보리는 주변 지역까지 포함한 인구가 45만으로 김해시 정도에 불과해 남한에 비해 상대적으로 인구과밀도가 적어 직접민주주의를 실현하기 쉽지만, 인구 과밀과 지역 불균형이 심한 남한에서는 이 제도에 끼워맞출 수 없다는 것이 현실이거든요.
    몇 일전 새누리당은 기초의원(시의원) 정당공청제를 폐지하자고 재상정했기 때문에 이와 관련해서도 쉽지 않을 것 같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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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당장 다른 나라의 제도를 가지고 와서 실행하는 것은 실패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이미 실현된 정직한 정치문화를 보고 배우려는 자세는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지난번 신년토론때에 유시민 전장관이 말했었죠, 여의도에만 있다보면 그렇게 시야가 좁혀진다고 말입니다. 민생결정권을 쥔 사람들이 탁상공론만 하고 있으면서도 자신들이 최선을 다한다고 믿으니 얼마나 무서운일인지 모르겠습니다. 제가 옮기고 있는 글 속에서 촘스키는 미국의 상황을 바탕으로 인터뷰를 한 것이라 한국의 것과는 많이 다를 것입니다만. 글을 올리면서도 머리속이 더욱 복잡해지는 것은 사실이네요. 짬 나는대로 다음 편 올려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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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저는 다른 나라의 제도를 도입하는 것에 문제가 있다고 보진 않습니다. 정서나 문화차이를 두고서 한국에 새로운 법 도입을 반대하는 풍조가 있는데 이를테면 '차별금지법' 같은 것이 되겠습니다. 그것이 문제라기보다 스웨덴의 직접민주주의 제도가 가능한 이유는 인구과밀 현상과, 도시 균형이 맞지 않다는 것이었거든요. 스웨덴 같은 제도를 생각해보려면 적어도 지방자치제도가 잘 굴러 가야하는데, 한국은 부패지수가 높은 편에, 지역 내에서도 패권싸움이 심하며, 국민소환제가 도입된 이후에도 제대로 적용이 되지 않는 등의 문제를 먼저 풀어야 할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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