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12월 21일 토요일

[수필] 당신의 모든 것은 이미 예견되어있다.

점쟁이들이나 열심히 읽는 '역경'이란 책이 있다.

주역이란 학문을 담고 있는 그 책은

원래, 서당을 다니며 글을 공부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읽던 필수과목이었다.

동양역사에서 주역은 

사방의 특성과, 물질의 요소, 별의 흐름을 가르치던 과학이었고

카오스이론을 내재하고 있는 수학이었으며

'나는 알파이고 오메가라' 말하던 서양의 개념을 앞선 철학이었다.


그 책은 읽는 사람에 따라 

이해하느라 머리가 아주 복잡해질 수도 있지만

'아하!'하고 명쾌하게 배울 수도 있는 특징을 가졌다.

대부분의 글을 알던 선비와 몰래몰래 숨어 글을 배우던 아낙들이

도덕경과 주역을 달달 외우며 기본 과목으로 습득했으니

이런 사람들에게 국가의 개념이나 애국정신을 심기는 어려웠을게다.

이때는 정말 오래 산 사람들이 당연히 지혜로웠다.

이론으로만 알던 것들을 몸으로 겪으며 살았기 때문이다.

다시 현재로 돌아와보면 어쨌거나,

철학관 아저씨들이 거드름 피우며 담배에 재를 떨굴때

그 재떨이 밑에 슬그머니 끼워져있는 책인게다.

뜬금없이 주역 얘기를 시작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일제시대부터 시작된 우민화 정책은 알고 있겠지만

70~90년대에 태어나 이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세대가

구체적으로 잃어버린 것이 무엇인지는 알지 못할 것이다.

이제 그 이야기를 하려 한다.




한국인이 한국에서 태어났다. 

몇 만년간 수많은 한국인이 정자와 난자를 만나게 하면서

유전적인 정보를 교환하며 DNA에 새겼다.

그 몇 만년간 한국의 정서를 배우고 한국의 음식을 만들어 먹었다.

할아버지는 손주들을 돌봤고

할머니는 집안의 대소사를 봤고 

아버지는 아이들과 쥐불놀이를 했다.

엄마가 콩을 발효시켜 된장 간장을 만들었고, 

같이 살던 이모와 삼촌은 또다른 언니 오빠였다.

물론 마냥 낭만적이지만은 않았다.

모두들 보릿고개가 오면 체면이고 나발이고 없었다.

갓 임신한 동서 몰래 누룽지 긁어먹던 형님도 있었을테고

옆집 순이네 닭 잡는 냄새를 맡고 몰래 월담도 했을것이다.

그것이 남한과 북한이 분단되며 시작된

이승만 시절의 친미정책으로 모두 뒤바뀌었다.

모든 것이 산업화 되었다.

라디오에서는 연신 경제적으로 성공한 아빠의 모습과

수동적이고 여성스러움을 강조한 엄마의 모습을 이상적으로 그려냈다.

할머니는 엄마를 시집살이 시키는 마귀였고

할아버지는 고리타분한 늙은이로만 나왔다.

희망찬 내일을 가지고 경제권을 쥐기 시작한 젊은 세대가

늙은 이들과 대립구도를 띄기 시작했고

늙다 = 쓸모없다의 개념이 착실히 잡혀갔다.

갈등이 생기기 시작한 가족들은 떨어져나가 핵가족을 이루었다.

아빠와 엄마는 돈을 벌러 나갔고 

아이들은 집에 방치되거나, 학원에서 덜 방치되었다.

어른들을 만나지 못하며 자란 아이들은 

자신들만의 문화를 만들었고 텔레비전에 열광했다.

보릿고개의 걱정에서 해방되었지만 

모두 정서적으로 굶주린 상황이 오게 되었다.

빙고~

정치인들, 기업인들이 속으로 외쳤다.

얼마 지나지 않아 티비 광고에 미인이 나와 말했다. 

이 화장품을 바르면 넌 완벽해져.

저 집에서 살면 남편도 매일 꼬박꼬박 들어올거야.

엄마아빠가 놀아주지 못한 아이들은 

이 광고를 보며 자라온 것이다.

매스미디어가 돈이면 사랑도 살 수 있다 말했을때

80년대 대학생들은 분노했다.

하지만 지금의 사회는 어떻게 변했을까?





다시 원래 할 말로 되돌아가서

당신의 모든 것은 이미 예견되어있다.

괜찮은 여자를 보면 섹스하고 싶어할 것이고

멋진 자동차를 보면 가지고 싶을 것이다.

혼자 있을 때 배가 고파지면 라면을 끓여먹을 테고

친구를 만나면 술을 마실 것이다.

할아버지 할머니랑은 본지 아주 오래 되었거나 이미 돌아가셨고

어머니랑 전화하면 미안함만 쌓이고

.. 아버지는 당신에게 전화를 거의 하지 않는다.

지하철에 있으면 불안하고 외롭고

집에 있어도 불안하고 외롭고

친구들 속에 있어도 불안하고 외롭다.

이런 불안이 자본주의의 원동력이다.

어딘가 모자란 듯한 이 감정이 소비를 부추긴다.

응? 정말이야? 하는 마음이 있다면 

교육방송에서 5부작으로 방송했던 [자본주의]라는 다큐를 보길 바란다.

잃어버린 것은 우리의 정체성이라는 교과서같은 소린 안할란다.

그것보다 더욱 광범위하게

당신은 문화, 역사, 세대, 가족을 

이미 잃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어쩌라구? 


내 예상을 뛰어넘어달란 얘기다.



자, 이제 시작할 때 꺼낸 주역 이야기로 마무리해보자.

그 사상에서 보면, 

삶을 가지는 것들은 생겨나면서부터 命을 받는데

그 본질은 방향, 시기, 환경에 영향을 받는다.

그러니 쌍둥이가 아닌 이상 모든 사람들이 다른 것은 당연하다고 말한다.

역경이 그토록 길고 장황한데도 애매하게 보이는 이유가 여기있다.

100명이 읽으면 100명의 이해가 각각 다르기 때문이다.

그러니 옛 사람들이 그 애매한 책을 공부하면서 

기본적으로 배운 것은

다른 삶과 입장을 학습하여 인지하고

유아기적인 호불호를 초월해 

다름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법이었다.

어? 아나키즘이랑 비슷한데? 하고 생각하는 이도 있겠다.

사실 비슷할 것이다. 

어차피 외계인도 아니고 사람의 머릿속에서 나오는 생각들인데

동서양이 어디있고 시대가 어디있겠는가.

이렇기에 주역을 한번쯤 구다보길 권한다.

모두 궁극적으로는 

"나 답게 살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하지 않은가.

그런데 그 자아가 이미 천민자본주의나 파시즘, 나치즘에 빠져있다면

그저 5초만에 알기 쉬운 가벼운 사람으로써 명을 다하게 될 것이며

후손들에게도 그저그런 유전자를 물려줄 뿐이다.


그러니 이 글을 읽는 모든 이들이 꿈을 놓지 말길 바란다.

언젠가 펄쩍 하고 뛰어오를 수 있게.






마지막으로 꽤나 훌륭한 영화 이디오크러시를 추천한다.





댓글 14개:

  1. 한번에 모든 것을 바꾸기는 어렵지만, 저는 사회를 변화케 하는데 가장 중요한 두가지를 교육과 문화라고 생각하고 있어요. 문화라 하면, 식문화부터 시작해서 미디어, 대중, 인터넷, 하위문화까지 두루 걸쳐 방대한데 그만큼 문화가 그 사회의 이데올로기를 다룰 수 있는 힘이 있다고 생각해요. 예술도 그 중 한가지구요. 그런데 문화만의 힘으로 뭔가 변화시킬 수 있을지 몰라도 그것을 지속적으로 영위해 나가는데는 교육이란게 필요하겠죠. 물론 본글 내용대로 역사도 중요할 것이고, 이것이 교육의 기능 속에 있다고 봐요.

    답글삭제
    답글
    1. 네. 김구선생님도 문화가 강한 나라가 장차 가장 강한 나라가 될거라는 말을 했지요. 그것을 바탕으로 교육을 만들어가야한다는 데는 동감입니다. 아주 오래전부터 느껴왔고 두 아들놈을 키우며 몸으로 느끼고 있답니다. 그런데 그 교육을 어디부터 어떻게 시작해야할지, 지금도 계속되고있는(또는 교학사 만행을 시작으로 더욱 가속화되고있는) 우민화정책을 어떻게 바꿔야 할지는 더욱 구체적으로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삭제
  2. 학원에서 가르쳐주는 수학보다 할머니가 가르쳐주셨던 구구단이 훨씬 재미있고 이해도가 높았는데 말이죠. 에고는 모든것을 채우려고만 하고, 외롭지 않기 위해 물신화 하며 차나 가방에 가치전도를 하는것이 안타깝습니다. 저를 포함 젊은이들은 나태에 너무 약한 존재라는것도 슬퍼요.

    답글삭제
    답글
    1. 개구리탕을 드셔보셨는지요? 저도 듣기만 했습니다만,
      육수와 야채가 든 찬물에 개구리를 산 채로 넣고
      냄비에 담아온다고 합니다.
      가스불을 켜면 국물 온도가 서서히 올라가는데
      개구리는 그것도 모르고 헤엄치며 다니다 그냥 익어서 죽습니다.
      갑자기 뜨거웠다면 바로 뛰쳐나왔겠죠..
      지금 젊은 사람들의 상황이 그렇다고 생각합니다.
      어딘가 잘못되었는지 대충은 알고 있지만
      구체적으로 생각할 시간에 스펙을 키우고, 토익토플을 준비하고,
      곧이어 뉴스에선 새로운 스캔들이 터지죠.
      어차피 세상은 썩었으니까, 내가 내 갈길만 가면 되겠지 하는 맘이죠.
      개구리처럼 냄비속에서 헤엄치고 있는데도 말이죠.
      그냥, 행동을 합시다. 폭탄을 설치하고 샘송을 보이콧하고
      빈 건물을 점령하는 것도 좋겠지만 일단 나부터 행동합시다.
      가족들과 사이좋게 지내고, 술 대신에 다른 재밌는 걸 해봅시다.
      그렇게 조금씩 바꿔보는 게 어떨까 싶네요.

      삭제
    2. 독일의 경우에는 예습과 참고서를 철저히 반대 하는 교육 풍토가 있습니다. 예를 들어 구구단을 미리 외워오면 학교서 혼나는 것이죠. 참고서를 미리 읽어 공부해도 혼납니다. 왜냐하면, 스스로 실패를 통해 체득한 것이 아니라 주입식으로 외운 것이기 때문에 본인 스스로 생각할 능력을 잃기 때문이죠.

      저는 여전히 폭탄도 좋고, 화염병도 좋습니다. 하지만, 제가 의미하는 폭탄과 화염병은 그러한 생각을 의미해요. 폭탄과 같은 생각과 화염병 같은 실천. 그러기 위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삶을 잘 사는 것이겠죠. 베를린에 온 뒤로 느낀 바가 큽니다. 책은 중요했었고, 여전히 중요하고, 앞으로도 중요하겠지만, 삶이 이전과 같다면 수 많은 책들이 무슨 소용일까 싶어요. 비슷한 이야기로 크로포트킨이 그랬었죠. "한 번의 폭동이 수 천권의 책이나 팜플렛보다 더 많은 일을 한다."라고.

      댓글 쓰다보니 이 블로그는 댓글 수정이 안 되는 것이 흠이자 장점이 될 수 있겠군요.

      삭제
    3. 민주씨 생각에도 동의를 합니다. 수 천권의 책이나 팜플렛보다 폭동만한 것을 이겨낼 수는 없겠지요. 그렇지만 중요한 것은 그 이후입니다. 폭동이 성공해서 정부가 전복되었다해도 준비되지 못한 국민들에게는 돌쟁이에게 쥐어진 가위와도 같을 겁니다. 어느 한 흐름에 휩쓸려 쉽게 편을 가르고 맞은 편을 숙청하겠죠. 그래서 수 천권의 책과 팜플렛, 수만의 목소리로 저변문화를 다지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이미 새누리당 정권이 수년 간 공을 들여서 한게, 온라인특별지부 설립으로 논란 잠재우기, 시위에 미꾸라지풀기 등등이 있었죠. 아주 쉽게 사그라들었어요. 수십년 동안 길들여진 국민들은 잡다한 지식을 뇌에 덕지덕지 붙였을 뿐, 한없이 가벼워지지 않았나요..그나저나 독일의 교육방식이 너무너무 부럽네요.

      삭제
    4. 그러한 삶을 잘 살아야겠다는 마음을 품고 베를린에서 서울로 돌와왔습니다만 아니 지금은 서귀포에 와있습니다만 글 한 줄 돌보기는 커녕 앞니 한 줄이 썩어갑니다.

      삭제
    5. 혁명이 시작만으로 끝나지 않고, 완수라는 단어를 쓸 수 있을 때에는 교육이라는 것을 통해 혁명에서 잉태된 생각들이 지속적인 힘을 갖을 때이겠죠. 그러한 것들의 가장 최전선에서 "삶으로..!" 라고 외치고 싶습니다.

      삭제
  3. 작성자가 댓글을 삭제했습니다.

    답글삭제
    답글
    1. 삭제한 글에 답글도 달 수 있군요. 답글은 다른 위치로 옮겨 달았습니다.

      삭제
    2. 삭제한 답글을 다시 삭제할 수도 있는데, 삭제한 글에 답글 달 수가 있다니.. 그런데 그런 기능들이 블로그스팟을 왠지 좀 더 허술하게 보이도록 만드는 것 같기도 하고.

      삭제
    3. 폰트 변경도 알파벳만 지원하는 허술함이 나름 매력있네요

      삭제
  4. schsch sch님 의료민영화 되기 전에 치과치료 받으시길.. 치간칫솔 쓰시면 그나마 썩는 속도를 늦출수 있습니다. 몸을 귀하게 여겨주시옵소서서서..

    답글삭제

댓글 수정이 안 됩니다.
댓글 작성 후 다시 한번 읽고 게시하길 권장합니다.